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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이튿날, 협회장의 초대를 받아 협회를 방문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숨어들지 않고 정식으로 방문했는데, 미리 말해놨는지 별다른 트러블 없이 협회장실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협회장, 노관식과 대화를 나눴다.
딱히 영양가 있는 대화는 아니었다.
그냥 이런저런 잡담이나, 과거 노관식이 겪었던 경험담 같은 이야기를 하루종일 떠들 뿐이다.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나를 만나고자 한 것일까?
그걸 물으니 노관식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답했다.
“신뢰를 쌓는 거뿐이네만?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에 우리 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나는 그사이에 튼튼한 다리를 세우고 싶네.” “신뢰란 게 그냥 대화 좀 나눴다고 생기는 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 적어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거든.” 그리 말한 노관식이 빙그레 웃는다.
그 꼴이 영락없는 너구리나 다름없어서 나도 모르게 쯧- 혀를 차게 된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노관식은 즐겁게 웃으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말일세. 내가 젊었을 적에….” 두런두런- 과거 자신의 경험들을 이야기하는 노관식의 모습은 꼭 꼰대와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떠나고 싶었다만, 이따금씩 튀어나오는 성재명에 관한 이야기 탓에 그것도 쉽지 않다.
인간일 적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성재명이란 인물에 대해 동경해온 나로서는, 당시 성재명의 최측근 중 하나라 할 수 있던 노관식의 이야기에 절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중간부터는 이런 내 기색을 눈치챈 것인지 노관식도 마치 떡밥을 뿌리듯 찔끔찔끔 성재명에 관환 이야기를 흘렸다.
특히나 내가 더 못 참고 자리를 일어서려 할 때쯤,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성재명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보면 역시 영악한 너구리가 따로 없다.
이용할 게 없어서 팬심까지 이용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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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리파워볼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 밉다.
“허허. 즐거운 시간이었네!” EOS파워볼 장장 세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신나게 자기 이야기를 떠든 노관식이 기분 좋게 웃었다.
어딘가 개운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모습과 반대로 나는 이미 녹초나 다름없다.
차라리 왕퐝과 한 번 더 싸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심적으로 지쳤다.
“…되도록 다음부터는 볼일 없었으면 좋겠군.” “으음… 내 다음에는 성재명 그 친구가 강원도 영월 미궁에 갔을 적의 이야기를 해주려 했는데… 듣지 않아도 되겠는가?” 불쑥 차오르는 살심을 팬심이 막아낸다.
강원도 로투스바카라 영월 미궁이라면 ‘구미호’가 나왔던 바로 그곳이다.
휴가차 놀러 갔던 성재명이 로투스홀짝 얼떨결에 SA랭크의 몬스터를 쓰러트렸던 바로 그 사건.
당시 여덟 살 남짓의 꼬마였던 나도 뉴스를 통해서 몇 번이고 들었던 이야기.
그때의 그 생생한 이야기를 무려 최측근에게서 들을 수 있다?
이건 역시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다. 오픈홀덤
“…다시 찾아오도록 하지.” “시원시원해서 좋군! 역시 자네도 내 소싯적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었나 보구먼. 언제든지 오게나! 내 맛있는 차와 다과를 준비해 놓을 테니.” “…….”
마지막 이야기를 못들은 체 조용히 떠나가는 나를 향해 노관식은 여전히 싱글벙글 웃을 뿐이었다.
그 꼴을 더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뒤편에서 다음에 보자며 손을 흔드는 노관식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래서 어떻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조용히 속으로 물으면, 여지없이 각양각색의 대답들이 돌아왔다.
그중에서도 내가 집중할 것은 ‘일곱 번째’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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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별다른 악의는 느껴지지 않아요!] 다른 녀석들과 다르게 상당히 얌전하고, 예의 바른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린다.
SS랭크로 진화하며 아홉 개로 늘어난 머리들은 당연하게도 각양각색의 마안을 가지고 있다.
비록 숙련도 자체가 부족한 탓에 왕퐝과의 실전에서는 잘 활용하지는 못했으나, 하나하나가 뛰어난 능력을 지닌 것만큼은 틀림없다.
그중에서도 일곱 번째 머리가 가지고 있는 마안은 ‘간파의 마안’.
그 이름처럼 상대를 완전히 간파하거나 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었지만, 그 눈을 통해 상대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볼 수 있었다.
나에게 적의가 있는지, 없는지.
말하고 있는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현재 기분이 어떠한지.
당장 전투에서는 큰 쓸모가 없는 능력이지만, 지금과 같은 일상에서 다른 인간을 상대할 때는 더없이 좋은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일곱 번째의 마안을 통해 알아본 노관식은 이쪽에 전혀 적대적이지 않았다.
완전히 호의를 보인다고 할 수도 없었다만, 그렇다고 또 적대적이지도 않으니 당분간 시간을 들일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말하는 걸 봐서는 무언갈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본체. 확률적으로 99퍼센트 정도.] 조용히 들려오는 아홉 번째의 목소리에 고개를 주억였다.
나 역시 노관식이 중대한 비밀을 아직 말하지 않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나 신뢰를 강조하는 건, 아직 내게 그 비밀을 말할 수는 없다는 거겠지.’ 노관식 본인이 제 입으로 말한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 아마 이것에 해당하는 걸 거다.
큰일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제 스스로 일을 찾아 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하나의 지성을 가진 생물로서 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노관식과의 사이에서 충분한 ‘신뢰’가 생기고, 그 중요한 일이라는 걸 듣기 전까지는 아마 당분간 그와의 교류를 더 이어나가야 할 것 같다.
[웃기셔. 그냥 성재명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뿐이면서!] 언제나처럼 딴지를 거는 왼쪽이의 말은 조용히 무시했다.
녀석이 무시하지 말라며 바락바락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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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 치킨 먹자.] 조용히 보채오는 오른쪽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주억이며 걸음을 서둘렀다.
늙은 능구렁이에게 시달린 만큼 어서 빨리 설이와 아이들에게 힐링 받고 싶다.


이후로도 노관식과의 만남은 계속됐다.
하루, 이틀, 사흘….
자꾸만 횟수가 늘어가는 만남 때문에 내 정신은 점점 더 피폐해져만 갔지만, 그 반대로 노관식이 말했던 ‘신뢰’란 것도 점점 더 쌓여만 갔다.
솔직히 나도 노관식도 이런 단순한 만남을 통해 신뢰가 쌓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은 어느 정도 우리 사이에 신뢰가 형성된 것이 느껴진다.
실제로 거의 매일같이 협회장실을 드나드는 이쪽 탓에 협회 내에 몇몇 소문도 도는 모양이고 말이다.
따로 알아보지 않아서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각각 중국과 일본으로 떠난 이찬걸과 토다, 이치죠가 돌아오고 이번 일만 끝난다면 다시 미궁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니까.
소문이란 원래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지는 법이니, 괜히 나서서 무언가를 할 생각은 없다.
그저 알아서 잠잠해지기를 기다릴 뿐.
그리고 이렇게 점점 쌓여가는 신뢰 속에 오늘 역시 노관식과 만남을 가졌다.
슬슬 얘기할 주제가 사라진 것인지 며칠 전에 했던 이야기를 또다시 반복하는 노관식의 행동에 이제는 비밀이고, 성재명이고 뭐고 그냥 다 때려치울까 고민하던 찰나였다.
불현듯 노관식이 입을 열었다.
“흠. 이제 우리 사이에 어느 정도 ‘신뢰’가 생긴 것 같구먼.” “…그렇지. 확실히 ‘신뢰’가 생기긴 했어.” 그의 과거 이야기를 읊으라면 이제는 하루 종일도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 신뢰가 생겼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못마땅하게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노관식이 피식이며 웃는다.
“너무 그렇게 기분 나빠 하지 말게. 꽤나 중요한 일이라, 나도 그간 고민 많이 했으니까.” 차분히 말하는 노관식의 태도는 어딘가 평소랑 달랐다.
평소에는 협회장이라는 그 직책에 맞지 않게 대단히 가볍고, 유쾌한 이였으나, 지금만큼은 협회장이라는 직책에 걸맞게 더없이 무겁고 진중하다.
그런 노관식의 태도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고민의 결과는 어떻지?” “기대하던 것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일단 자네를 신뢰할 수 있겠더군.” “…정말 신뢰를 좋아하는군. 과거에 배신당한 적이라도 있나?” “흐음. 크게 한번 뒤통수를 맞은 적이 있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덤덤히 말하는 노관식의 모습에 무심코 입 밖으로 말이 새어 나온다.
“성재명인가?”
노관식은 대답 대신에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성재명에 관해 말할 때 노관식은 정말 즐거워 보였지만, 또한 그렇지 않아 보였다.
한없이 동경하는 것 같았지만, 반대로 한없이 미워하는 것도 같았다.
그저 몇 가지 단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굳이 그 감정을 표현하자면 ‘애증’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잠시간 입을 다문 채, 노관식을 바라보았다.
노관식이 덤덤히 차를 홀짝였다.
“자, 그럼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야겠구만.” 꽤나 길어지던 침묵에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려 할 때쯤, 노관식이 입을 열었다.
그가 흘깃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황석호에게 손짓한다.
“그것을 가지고 오거라.” “…예, 협회장님.” 꾸벅- 고개를 숙인 황석호가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떠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두툼한 서류 뭉치를 가지고 돌아왔다.
공손히 내 앞에 내려놓아진 서류 뭉치를 슬쩍 살핀다.

“키메라 프로젝트(Chimera Project)?” 무심코 입 밖으로 새어 나온 목소리에 조용히 차를 홀짝이던 노관식이 말했다.
“세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일세.” 딸칵- 찻잔을 내려놓은 노관식이 말을 이었다.
“100여 년 전 미궁이 나타나고, 그 안에 몬스터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을 때. 그리고 그 무지막지한 강함에 인류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을 때쯤 처음 나온 이야기일세.” “…….”
“지금에는 헌터들이 차고 넘치지만, 당시만 해도 각성한 헌터는커녕 몬스터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책도 없었네.” “…….”
“그래서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는 몬스터를 당해낼 수가 없고. 그에 대한 대응책으로 몬스터의 신체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었지.” 노관식이 조용히 팔짱을 꼈다.
“지금으로서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다만,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세계 각지에서 여러 비밀스러운 실험들이 자행됐지. 딱 100년 전 시대상에 걸맞은 그런 비인도적인 실험들이 말이야.” “그 실험의 결과는?” 장웨이의 암시장에서 보았던 요시다와 그 부하들을 떠올리며 물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모르겠나? 당연히 실패했지.” “흠. 그런가?” “뭐, 당시의 과학 기술로는 무리였을 테지. 얼마 뒤에 헌터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실험자체의 실효성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말이야. 실험비로 아까운 생돈을 날리는 것보다 헌터들을 지원하는 게 훨씬 이득이었거든.”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노관식의 모습에 가만히 고개를 주억이는 한편, 서류 뭉치를 한차례 훑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지금 꺼낸 이유는?” “으음. 그 비인도적인 계획이 지금 21세기에 행해지고 있다면 어떻겠나?” “그게 이 ‘키메라 프로젝트’라는 건가?” 노관식은 한차례 고개를 주억거렸다.
“헌터계가 발달하며 몬스터에 대한 실질적인 위험은 크게 줄었지만, 언제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지. 더 강한 힘을 얻기 위해 과거 사장되었던 계획이 부활한 거지.” 쯧- 짧게 혀를 찬 노관식이 말을 잇는다.
“강한 힘만 얻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이들이 어디 한둘이겠나? 그깟 몬스터 신체 몇 부위 가져다 붙이는 거로 강해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럴 헌터들이 차고 넘치지.” “흠. 말하는 걸 봐서는 딱히 키메라 프로젝트란 것에 부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은데?” 슬며시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노관식이 ‘음’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 역시 계획 자체에는 그리 부정적이지는 않아. 헌터들의 힘이 강해진다는 건, 그만큼 인류의 안전 역시 함께 강해진다는 거니까.” -다만….
슬며시 말끝을 흐린 노관식이 손끝으로 내가 쥐고 있는 서류 뭉치를 가리킨다.
“그 과정이 문제란 거네. 7페이지를 한번 보게나.” 노관식의 말에 서류 뭉치를 넘긴다.
그곳에는 전국의 미궁에서 실종되는 헌터들의 숫자를 보기 쉽게 정리한 그래프가 있었다.
“과거에 비해 그 수가 많이 늘었군.” “사실 헌터들의 실종이야 늘 있는 일이긴 하다만, 그래도 그 정도가 심해졌어. 근래 미궁의 공략이 점점 매뉴얼화되면서 오히려 실종자가 줄어야 정상일 텐데 말이지.” 그리 말한 노관식이 목이라도 탔는지 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처음에는 그저 평범하게 실종자 수가 늘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자꾸 보다 보니 아무래도 영 아니다 싶은 거야. 그래서 한번 알아보자 싶어서 자료를 찾아봤지.” -다음 페이지를 보게나.
노관식의 말에 서류를 넘긴다.

“실종자가 늘어난 건 국내에서뿐만이 아니군.” 나지막이 내뱉는 말에 노관식이 고개를 주억인다.
“세계 헌터 연맹에 직접 문의해서 손에 넣은 자료니 신뢰성은 정확하네. 당장 눈에 띄게 큰 변화는 없지만, 매년 차근차근 그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어.” “…그렇군. 그래서 이것만으로 어떻게 키메라 프로젝트에 대해서 알게 된 거지? 단순히 실종자가 늘어났다는 것만으로는 알아내기 힘들 텐데?” “실종자에 대해 조사하던 중 우연히 그 실체를 잡을 수 있었지. 아니, 실체라기보다는 단순한 허상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군.” 그리 말한 노관식이 쓰게 웃는다.
“지난 몇 년간 조사했지만, 알아낸 건 지금도 계속 헌터 실종자들을 통한 비인도적인 실험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과 어느 정도 소정의 성과를 보았다는 것, 그리고 ‘키메라 프로젝트’라는 우리가 임시로 지은 이름 정도뿐일세.” 어쩐지 씁쓸해 보이기까지도 한 노관식의 모습에 말없이 서류 뭉치를 살폈다.
지난 몇 년 동안 노관식이 조사했을 내용들이 잘 정리된 모습이다.
가만히 그 안의 정보들을 훑으며 나지막이 물었다.
“그래서 굳이 내게 이걸 알리는 이유는?” “아직 그 실체도 잡지 못했지만, 일어나는 일의 규모를 봐서는 배후에 있을 놈의 정체가 보통은 아닐 테니 말일세.” 그리 말한 노관식이 덤덤히 내뱉는다.
“힘이 필요하네.” 노관식의 이야기에 이전에 있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요시다가 분명 보스라고 했던가? 분명 그게 이 일의 배후에 있을 놈이겠지.’ 당시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분명 노관식의 말처럼 보스란 놈은 보통이 아니었다.
[캬아─ 죽여 버리겠어! 팔다리를 찢어서 비참하게 땅을 구르게 할 거야! 잘근잘근 씹어먹어 버릴 거라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아득바득 이를 가는 왼쪽이의 모습에 조용히 실소를 흘렸다.
그래. 확실히 우리도 갚아줄 것이 있었지.
그 점을 생각하면 아무런 정보도 없이 맨땅에서 조사하는 것보다는 노관식과 협력해서 조사하는 게 보스란 놈을 찾는 데 더 효율적이다.
다만 걸리는 것이 있다면.

“힘이 필요하다라. 그렇다면 굳이 내가 아니라도 상관없을 텐데? 지금은 수가 줄었지만, SS랭크 헌터도 아직 둘이나 남아 있고, 무엇보다 이번 일을 공론화한다면….” “그럴 수가 없었네.” 단호히 고개를 저은 노관식이 말을 이었다.
“누가 적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 괜히 공론화했다가는 내가 표적이 되기 쉽겠지. 아무리 공공의 안전이 우선이라고 하지만, 내 목숨 역시 소중하거든.” 그리 말하며 씨익 웃는 노관식의 모습에 가만히 고개를 주억였다.
“배후에 SS랭크 헌터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적어도 그에 비견되는 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되네. 당장 자네만 보더라도 어디 있다 뚝- 떨어졌을지 모를 SS랭크잖은가? 자네 같은 이가 한둘쯤 더 있다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걸세.” 정확히 말하자면 이쪽은 헌터가 아닌, 몬스터지만 굳이 꺼낼 이야기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실제로 세상의 이목을 피해 숨어 있는 SS랭크 헌터가 한둘쯤 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군. 할 이야기는 이게 끝인가?” “몇 가지 세세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만, 본론은 끝이군.” 노관식의 이야기에 덤덤히 고개를 주억이며 몸을 일으켰다.
“이 자료는 가져가도 되나?” “대외비의 이야기일세. 조심해서 다뤄주게나.” “적어도 함부로 바깥으로 나돌지는 않게 하지.” 그렇게 볼일이 끝났다는 듯 등을 돌리는 내게 노관식이 말을 덧붙인다.
“그래서 어쩔 생각인가? 함께할 텐가?” 그의 물음에 가만히 고개를 주억였다.
노관식이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기쁘게 미소짓는다.
“미리 말하지만 이번 일에 함께하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흥미와 관심 때문이다. 당신처럼 공공의 안전인가, 뭔가 하는 대의를 위할 생각은 없어.” “상관없다네. 이쪽이 필요한 건 여차할 때를 위한 힘이니까.” “흠. 그렇군.” 한차례 고개를 주억이며 자리를 떠났다.
떠나가는 나를 향해 노관식이 마지막 당부를 덧붙인다.
“앞으로도 자주 찾아오게. 아직 할 이야기가 많으니까 말일세.” 마지막 그의 이야기는 못 들은 척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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