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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닉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축 늘어진 그 모습을 002가 가만히 지켜보았다.
의식적으로 나누던 대화가 차츰 사라졌다.
말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지쳐가는 것이 훤히 보인다.
그리고 종래에는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002는 이런 닉스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영겁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는 미궁에게 있어서도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본디 필멸자에 불과했던 닉스가 이만큼이나 견딘 것도 용한 것이었다.
002 역시 그동안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니었다.
외부와 단절되어 본체와의 연결이 끊긴 지금의 상황에서는 정신체에 불과한 002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었다.
고작 해봐야 닉스가 미치지 않도록 그 말동무가 되어주어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전부.
그마저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에너지를 다 쓰는 것으로 002의 정신체는 얼마 가지 않아 소멸하겠지.
그 사실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002는 이미 충분히 만족할 정도로 오랜 시간을 살아왔으니까.
단지 002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소멸하고서 이곳에 혼자 남겨질 닉스에 대한 것이었다.
대화할 상대 하나 없이 홀로 지내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002는 지독하도록 잘 알고 있으니까.
그 고독감을 과연 참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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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는 파워볼사이트 그러한 사실이 너무나 걱정되었다.
001 – 002. 파워볼게임사이트
최초에 있었던 분열로부터 태어난 두 번째 미궁.
미궁이란 것이 파워볼실시간 태어난 순서에 따라 그 강함이 나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수많은 미궁들 중에서 그 격만큼은 두 번째로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미궁 중에서 두 번째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001 – 002란 미궁이었으니까.
두 번째로 태어난 미궁인 만큼 001 – 002는 정말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보통이 이들이 실시간파워볼 상상도 하지 못할 정말 오랜 세월을 말이다.
그만큼 수많은 세상을 넘나들었고, 수많은 생명들을, 또 인류를 지켜봐왔다.
그런 만큼 002에게 있어 다른 몬스터나 인류, 생명체란 것은 그저 지나가는 개미,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정도에 불과했다.
닉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파워볼사이트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호기심뿐이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레귤러.
이 이레귤러가 자신에게 해가 될까 하는 걱정보다는 그저 호기심이 더 앞섰다.
그래서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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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귤러를 지켜본 시간은 002의 오랜 삶에 있어서 정말 찰나에 불과할 정도의 짧은 시간에 불과했지만, 호기심이 호의로, 그 호의가 호감이 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딱히 커다란 이유는 없었다.
무언가를 싫어하는 데에는 이유가 필요할지 몰라도, 좋아하는 데는 딱히 커다란 이유가 필요 없으니까.
그 오랜 세월 취미라고는 그저 다른 미궁들을 먹어 치우거나 괴롭히는 정도밖에 없었던 002에게 새로운 취미랄 것이 생겼다.
처음에는 단순한 장난감 정도였고, 이후에는 004가 가르시아에게 그랬던 것처럼 적당한 그릇으로 사용할까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라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002는 제 생각보다 더 닉스를 좋아하고 있었다.
별다른 거리낌 없이 제 영혼과 닉스의 영혼을 이을 정도로 말이다.
002는 닉스가 저와 대등한 관계가 되기를 바랬다.
어느 한쪽이 손해 보거나 후원해주는 관계가 아닌.
완전히 수평적인 대등한 관계.
이른바 말하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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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준비한 끝에 겨우겨우 성공하는가 싶었더니, 현실은 이런 곳에 갇히는 꼴이라니….
002는 몹시나 안타까웠다.
제 노력의 결과가 결국 이렇게 되어버린 것에, 또 이런 곳에 홀로 남겨질 닉스의 존재가.
그렇기에 마냥 포기하고 지켜볼 수가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쥐어짜 002가 입을 열었다.
[포기하지 마, 닉스.] “…….”
002의 목소리에도 닉스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범인은 상상하지도 못할 기나긴 세월 속에 파묻힌 닉스는 눈을 닫고, 귀를 막았다.
대답 없는 목소리만이 외로이 메아리친다.
002가 다시 한번 에너지를 쥐어짰다.
퐁퐁-
소멸의 위협을 무릅쓴 채 002가 평소 사용하고는 하던 슬라임의 모습으로 현계했다.
꾹- 닫혀 있던 닉스의 눈이 슬며시 떠진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공허한 눈동자.
언제나 의지로 가득 찼던 눈은 생기를 잃고 까맣게 죽어 있었다.
【정신 차려라. 가족들을 봐야 하지 않겠나?】 닉스는 물끄러미 002를 바라보았다.
잔뜩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족들?’ 【그래. 설이와 스노우. 다른 모두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라면 저기도 얼마든지 있다.’ 흘깃- 닉스의 시선이 어둠 속에서 쉬지 않고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향했다.
쉼 없이 반짝이는 그것들의 모습은 희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절망에 가까웠다.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으면서도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그것.
닉스가 그 긴 세월 동안 버텨줄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기도 하면서 또한 닉스가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만든 원흉.
반짝이는 절망의 구렁텅이.
【그렇다고 정말 이대로 포기할 건가?】 ‘방법이 없으니까.’ 【단정 짓지 마라.】 ‘…무슨 뜻이지?’ 희미하기 그지없던 눈동자가 002를 향한다.
【제아무리 저것들이 무한에 가깝다고는 하지만, 너 역시 ‘무한’이다. 비록 지금은 그저 가능성밖에 없는 반쪽짜리에 불과하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은 무한하다.】 이제는 정말 0에 한없이 가까운 에너지를 느끼며 002가 말을 잇는다.
【포기하지 마라. 넘치는 시간들 속에서 단순한 가능성에 불과했던 것들을 네 것으로 만들어라. 이제야말로 온전한 ‘무한’이 되는 거다.】 그 말을 끝으로 002의 몸이 서서히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별다른 감정의 동요가 없던 닉스의 두 눈동자가 오랜만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소멸해가는 002의 모습에 닉스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런 닉스의 모습에 002가 희미하게 웃었다.
【바깥에서 다시 만나자, 닉스.】 마침내 어렵사리 존재를 유지하던 002의 정신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 괴상한 공간 속에 닉스는 온전히 혼자가 되었다.

002가 사라졌다고 해서 닉스가 완전히 정신을 차린 것은 아니었다.
002의 소멸은 오랜 세월 동안 마모되었던 닉스의 감정에 작은 풍파를 일으키기는 했지만, 이미 잔뜩 닳고 닳아버린 감정에 격동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작게 출렁이던 닉스의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곧 다시금 고요해졌다.
닉스가 다시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또다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둠 속을 빼곡히 밝히던 별들의 일부가 사라지고, 다시금 새로운 별들이 나타날 동안 닉스는 조용히 고개를 파묻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흘러가는 시간들 만큼이나 속절없는 세월을 보냈다.
사고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며 그냥 살아갈 뿐.
강대한 육체는 그 오랜 세월 동안 여전히 흐트러짐 없이 멀쩡했지만, 이미 닉스는 정신적으로 죽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닉스가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눈을 떴다.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저 문득 눈을 떴을 뿐이다.
그의 눈이 오랜만에 어느 별 속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이제 막 시작되는 어느 이야기가 있었다.
유준영이 보인다.

아무런 근거 없이, 그저 막연한 기대 하나만으로 미궁을 뛰어드는 미련하기 그지없는 사내.
지금의 닉스가 보기에는 머저리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멍청한 바보.
의심 같은 거 할 줄 모르고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는 호구.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 시절의 흑역사.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닉스가 슬며시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오랜만에 닉스의 감정이 움직였다.
그래, 분명 저랬던 시절도 있었구나.
평소 느끼기에는 그때와 크게 달라질 거 없다고 여겼건만, 이렇게 다시금 과거의 모습을 보니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닉스가 알고 있던 과거의 모습이 찬찬히 흘러간다.
믿었던 동료들에게 배신당해, 몬스터가 되었다.
막막한 현실 앞에 좌절하는 것도 잠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를 시작했다.
수많은 몬스터들과 헌터들을 만났다.
사막을 넘고, 평야를 넘어, 용암 구역의 아르데를 만났다.
새하얀 설원 위에서 설이와 스노우를 만났다.

바깥으로 나가 복수를 끝마치고, 다시금 미궁을 나아갔다.
광활한 천공에서 새로운 친우를 사귀고, 나이 많은 용들을 만났다.
그리고 도착한 미궁의 끝.
그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미궁의 존재.
그가 지금껏 겪어온 일생이 느릿하게 흘러간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닉스가 느릿하게 눈을 껌뻑였다.
이런 식으로 다시금 되짚어 본 그의 삶은 사실 그리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었다.
당시의 저로서는 분명 후회 없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 와서 보기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좀 더 나은 선택이, 옳았던 결정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랬다면 어땠을까, 저랬다면 어땠을까.
미련이 남고, 후회가 생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감정들이 오랜 시간 동안 굳어 있던 닉스의 머리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생각, 사고란 것을 다시금 하게 해주었다.
후회와 미련을 넘어 그 다음에 닉스가 되찾은 생각들은 남겨져 있을 이들에 대한 것이었다.
설이와 스노우. 토순이와 루엘.

나이 지긋하신 용 자매와 그녀들을 따르는 봉황과 비룡.
건방진 문어와 다소곳한 조개. 의리 넘치는 설인과 티격태격하면서도 우애 깊은 그리폰 남매.
언제나 기분 나쁘게 웃는 리치와 그를 따르는 수많은 언데드.
이제는 제법 오랜 인연이 된 리자드맨들과 다른 몬스터들까지.
그들뿐만이 아니다.
정수아와 여동생. 백장미를 비롯한 바깥에 있을 수많은 인간 부하들까지.
닉스는 정말 오랜만에 잊고 있던 것들을, 모른 척 외면하던 것들을 떠올렸다.
가장 뒤늦게 떠오른 것은 자신을 향해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사라지던 슬라임의 모습.
기분 나쁘게 닉스가 평소에 귀여워하던 분홍 슬라임의 모습을 빌린 002는 건방지게도 마지막까지 자신을 걱정하며 사라졌다.
닉스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지금 자신의 꼴이 어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힘없이 늘어져만 있는 지금의 꼴이 어떤가?
아무런 힘도 없던 나약한 인간 시절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때보다 나아진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퇴보하고 있었다.

적어도 인간 시절의 유준영은 희망이 없다고 해도, 나약하게 쓰러져만 있지 않았다.
어떻게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했었다.
하지만 정작 지금은 어떤가?
지금의 자신은 당당하게 과거의 자신보다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저승에서 지켜보고 있을 아르데가 지금의 꼴을 본다면 무슨 소리를 하겠는가?
자신 손에 죽어간 수많은 헌터들이, 몬스터들이 지금 모습을 보고 있다면 내가 저런 것 따위에게 죽었다며 억울해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병신 머저리같이 궁상떠는 것도 여기까지다.
희망이 없다면 희망을 만들면 된다.
포기하고 수긍하는 것은 맞지 않았다.
늘어져 있는 것도 수만 년이면 이제 충분하지 않을까?
오랜 시간 끝에 닉스가 마침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닉스는 사라져가던 002의 모습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었지만, 지금에 와서 녀석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닉스가 가진 <무한>이라는 이름의 스킬.
그 거창한 이름과 달리 그저 무한한 가능성 정도만을 내포한 스킬이다.
단순히 보자면 가능성만이라도 얻을 수 있다는 부분에서부터 무척 대단한 스킬이지만, 정작 모든 것을 내포했다는 뜻의 무한으로 보자면 이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스킬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닉스는 이 가능성들을 더 이상 가능성으로만 남겨두지 않기로 결정했다.
소멸하기 전의 002는 말했다.
자신은 ‘무한’. 지금은 단지 수많은 가능성만을 가진 반쪽짜리에 불과했지만, 이곳에서의 무한한 시간은 이런 반쪽짜리를 온전하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모든 가능성들을 온전히 완벽히 만드려면 분명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할 테지만, 닉스는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은 많았다.
이곳은 말 그대로 무한한 곳이니까.
시간이 흘렀다.
자신의 스킬 속에 포함된 수많은 가능성들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도 닉스는 하염없이 제가 돌아갈 제 세상을 찾았다.
수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닉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무한한 가능성이란 말 그대로 모든 것들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여전히 제 원래의 세상을 찾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닉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곳에 갇혀 있던 만큼의 세월이 다시금 흘렀다.
끝이 없다.
전능까지는 아니지만, 만능이라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하고자 한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경지를 이루었지만, 그럼에도 원래의 세상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닉스는 과거와 달리 포기하지 않았다.
지치는 것은 여전했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나아갔다.
다시금 기나긴 세월이 흘렀다.
하고자 한다면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제는 정말 전능이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아직 무한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무한이란 것은 원래 끝에 닿을 것 같으면서도 닿지 못하는 것이니까.
여전히 제 세상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제는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으니까.
영겁을 훌쩍 넘기는 기나긴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정말로 온전한 무한이 되었다.
전능을 넘어선 그 이상의 무한.
이제는 이 지루한 곳에서 빠져나갈 시간이었다.
상상도 하지 못할 오랜 세월을 보냈음에도 이곳에 남아 있는 감정 같은 것은 없었다.
정이나 다른 감정을 갖기에는 이곳은 너무나 잔혹하고 지독한 곳이었으니까.
닉스는 이 지독한 곳을 벗어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어두컴컴하던 세상이 찢어져 나갔다.
오랜 과거에 겪었던 끔찍한 차원압이 다시금 덮쳐왔지만, 머나먼 과거와 달리 닉스는 아무렇지 않았다.
찬란하기 그지없는 빛이 닉스를 덮었다.

조용히 다시금 눈을 뜬 닉스를 반기는 것은 한창 대화를 나누는 중인, 002와 004였다.
자신을 용서해달라 말하는 004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는 002의 모습.
당연하게도 원하던 시간대로 무사히 도착한 모양이었다.
닉스에게 있어서는 오랜 과거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 속의 모습을 닉스가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이렇게 구차하게 매달리는…. 무슨?】 무심코 말을 잇던 002가 의아하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영혼이 이어져 있는 만큼 닉스의 변화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퐁퐁- 튀어 오르던 슬라임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닉스를 바라보았다.
그런 002의 모습에 닉스가 자그맣게 실소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걱정하며 사라지던 002의 모습을 기억한다.
【닉스…. 너 무언가가 달라진 것 같….】 【괜찮다, 002. 나에 대해서는 나중에 천천히 말해줄 테니까.】 웅웅- 마치 미궁처럼 덤덤히 내뱉는 닉스의 모습에 002가 조용히 경악했다.
그런 002의 반응에 닉스가 다시금 작게 실소했다.
그래, 이런 002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만큼 다른 이들의 모습 또한 보고 싶다.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이들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게 아니라, 직접 그 곁에서 함께하고 싶었다.
닉스가 문득 시선을 돌렸다.
002와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004를 이루는 빛의 형상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지금의 것은 무슨…? 설마…. 001 – 001?】 닉스의 기척이 제가 아는 누군가를 닮았던 것일까?
잔뜩 당혹스러워하는 004를 닉스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따지고 보면 그간 닉스가 고생했던 것은 모두 004의 탓이었다.
녀석만 아니었다면 닉스가 그런 곳에 갇힐 이유도, 002가 그렇게 허망하게 소멸할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
다만, 닉스는 그럼에도 분노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004 따위에게 화를 내기에는 닉스는 이미 그 수준이 한참이나 달랐으니까.
다 큰 어른이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만큼이나 추한 것은 없다.
잠시간 004를 바라보던 닉스가 조용히 혀를 날름거렸다.
딱히 눈에 띄는 무언가를 한 것은 아니었다.
닉스는 그저 조용히 혀를 날름거린 것뿐이었지만, 그 단순한 행동 하나에 004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삽시간에 일어진 일에 002가 눈을 부릅떴다.
004가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말끔히 소멸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004가 소멸했음에도, 여전히 미궁은 멀쩡하다는 것.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002가 멍하니 닉스를 바라보았다.
과거와 달리 그 머릿속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멍하니 저를 바라보는 002의 시선에 닉스가 피식 실소했다.
‘돌아가자, 002. 설명은 앞으로 천천히 해주마. 시간은 아주 많으니까.’ […응. 알겠어.]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음에도 002는 별다른 불만 없이 수긍했다.
어찌 되었건 002가 닉스에게 느끼는 감정만은 변함이 없었다.
제아무리 닉스가 그가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변하더라도 002는 여전히 닉스의 편일 것이다.
그의 감정은 그 정도의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닉스와 002가 주인이 사라진 미궁을 떠났다.
전이를 통해 단번에 사라진 둘과 함께 미궁이 천천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컁컁!”
해맑게 저를 향해 달려오는 설이를 닉스가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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