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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다이아몬드 이야기

테일러 버튼 (Taylor-Burton) 다이아몬드 -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러브스토리가 담겨진  세상 어느 큰 보석 보다 가장 훌륭한 보석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테일러 버틑(Taylor-Burton)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테일러 버틑(Taylor-Burton)
69.42캐럿 크기의 페어컷트의 이 다이아몬드는 1969년 경매에서 매입하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기로 했다. 그 결과 뉴욕의 보석상 카르티에가 구매하여 "카르티에"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다음날 리차드 버튼이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위해 비밀 금액으로 구입함으로써 테일러 버튼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테일러 버튼은 11월 중순, 모나코의 자선파티에서 팬던트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1978년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 다이아몬드를 공매하여 수익의 일부를 보츠와나 병원 건립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구입예정자가 다이아몬드를 관찰하는데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2,500달러였다.
1979년 6월 이 다이아몬드는 약 300만 불에 팔렸고, 지금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렌체 다이아몬드 - 세계 4대 저주받은 다이아몬드의 2번째로 알려진 마리앙뚜아다이아 피렌체  다이아몬드.
마리앙투아네트
마리앙투아네트
피렌체 다이아몬드는 세계 4대 다이아몬드 중 하나지만 현재는 그 행방을 알 수 없고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와 함께 저주의 다이아몬드라고 알려져 있다.
피렌체 다이아몬드는 인도에서 나왔는데 포르투갈 군대가 16세기에 바자야 나가르에서 그 다이아몬드를 빼앗았다.
19세기에는 이탈리아 북부 토스카나 대공의 소유가 되고 15년 뒤에는 오스트리아로 와서 오스트리아 황제의 왕관에 장식되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의 소유가 되어 이때부터 피렌체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이 붙혀졌다.
그 뒤에는 마리아 테리지아의 딸 마리앙투아네트 혼수품으로 프랑스로 넘어가고 마리앙투아네트는 프랑스 대혁명 때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죽은지 17년만에 나폴레옹의 부인 마리루이즈의 소유가 되었으나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귀양을 가 그 곳에서 죽었다.
토스카나 대공의 다이아몬드라는 이름도 붙혀진 피렌체 다이아몬드는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의 목걸이에 장식했고 엘리자베트 황후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살해 당했다.
마지막 소유자는 오스트리아의 황후 치나 황후로 1922년 오스트리아 제국이 혁명으로 명망하자 황실 가족은 스위스로 망명했고 치나 황후는 다이아몬드의 행방에 대해서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죽었다.
아이돌의 눈 (The Idol's Eye) - 세기의 다이아몬드 1600년 페르시아 지방에서 발견된 다이아몬드로, 작은 달걀 크기의 납작한 페어 모양이며 무게는 70.20캐럿인 '아이돌의 눈'

도난 당한 것으로 유명한 이 다이아몬드는 여러 가지 사연도 많으며, 원래는 한신전의 동사에 박혀있던 두 눈 중 하나였다고 하며, 캐시미어 족장이 라시타 공주를 납치해간 터키의 술탄에게 몸값으로 이 '아이돌의 눈'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호텐시아 (The hortensia) - 세기의 다이아몬드
보하르네스 (Hortense de beauharnais)
보하르네스
(Hortense de beauharnais)
32.32캐럿인 호텐시아는 나폴레옹의 양녀이자 조세핀의 딸이었던 여왕 호텐스 보하르네스 (Hortense de beauharnais)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호텐시아는 루이 14세가 사들인 후 프랑스 왕관에 장식되어 있으며, 현재 파리의루브루 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산시 (Sancy)  다이아몬드 - 세기의 다이몬드 중에서 대칭의 구도를 이룬 패식으로 
연마된 최초의 다이아몬드.
앙리 3세 (1551-1589)
앙리 3세 (1551-1589)
산시 다이아몬드는 모든 유명한 다이아몬드 중에서 대칭의 구도를 이룬 패싯으로 연마된 최초의 다이아몬드로 기록되어 있으면서, 한편으로 가장 혼란스런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유럽의 역사중에서 이 다이아몬드를 통해 장장 4세기에 펼쳐진 사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산시'라는 이름을 다이아몬드가 적어도 3개 이상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시는 1570년 프랑스의 터키대사인 니콜라 드 산시라는 사람이 콘스탄티노블에서 구입한 것으로 그는 이것을 당시의 국왕인 앙리 3세에게 헌상하였고 앙리 3세는 항상 착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수 산시가 재무장관이 되었을때 앙리 4세는 군대를 충원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였기에 이 다이아몬드를 팔기로 결정했고 결국 산시는 영국의 제임스 1세에게 넘어갔다. 이것을 프랑스의 루이14세가 영국의 제임스 2세에게 다시 매입하였고 그 후 산시는 1792년까지 프랑스의 왕실 보석중에 있었으나 그해 프랑스 혁명중에 다른 보석과 함께 도난 당하게 되었다. 그후 다시 세상에 출현하여 프랑스 상인에 의해 러시아 황태자인 미도프에 팔렸는데 황태자는 10만 달러에 이 다이아몬드를 매각하였고 다시 보석상인 바프스트에 의해 100만 프랑의 정찰이 붙어 파리의 전시회에 출품되었다. 1906년경 윌리엄,W 아스터가 이 다이아몬드를 구입하였다고 일컬어지나 그의 미망인인 아스터 부인과 인도 파티아라의 마하라자라 등 두사람 모두 이 다이아몬드를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아스터 부인이 가지고 있는 다이아몬드가 마하라자가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산시의 기술과 일치한다고 한다.
가장 최근의 공식적인 기록은 1962년 프랑스 전시회에서 프랑스 역사에 남을 다른 2개의 유명한 다이아몬드인 리젠트 및 호프와 함께 '산시'로 인정되는 중량 55.23캐럿의 페어 셰이프(Pear shape) 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